본문 바로가기
작가 이야기

풍부한 우의성(寓意性)과 상징성

by 염재만 2010. 7. 7.

[작품해설/염재만]

 

풍부한 우의성(寓意性)과 상징성

 

문학평론가 임헌영

 

 

구체적인 사건을 다룬 소설 중에서도 작가에 따라서는 풍부한 우의성(寓意性)을 지닌 경우가 있는데 염재만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그는 특정한 사건을 풍자적으로 접근하면서 사건 전개나 구성 그 자체가 드러내는 이상의 상징성을 담아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뜻밖의 흥미와 당혹감을 함께 일으킨다.

읽고 나서도 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었을까를 되묻게 만들 정도로 염재만의 소설은 상징성과 우의성에 바탕한 창작 방법을 즐겨 쓰고 있다.

 

 강아지가 암소갈비 아니면 잡수시질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가죽 두렁이를 두르지 않는 자가 없는데 그건 배가 터질까 겁나서인 것이다. 이토록 된 건 다 개국 이래 정치하는 사람들이 피와 살을 깎아 힘써 만든 결과이지 제물에 되어진 건 절대로 아니었다.

 한데, 어쨌든 한번 이렇게라도 되어진 바엔, 싫다고 되물릴 수도 없는 일이며, 지금에 와서 원통하다거니 답답하다거니 지껄일 필요도 없으며, 어찌 되었든 가타부타 떠들 일이 못되었다.

 그저 고즈너기,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참고 견디는 수밖엔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은 까닭 없이 깊은 신음을 내지른다.

 그것이 그런대로 살아 있다는 표시였던 것이다.

 아무튼 매사가 복잡 미묘하고, 까다롭고 한건(旱乾)해서 산다는 것이 그대로 악운의 연속이었다.

 (<떡>)

 

염재만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 소설은 풍요의 도가 지나쳐 사람들이 서로가 돈을 쓰는 데 너무나 힘이 들어 고생하는 모습을 익살맞게 그리고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농사꾼이나 노동자는 돈 한 푼 안 쓰고도 살아간다. 뉘라 감히 말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 특권층을 제외한 전체 9할 이상의 국민이 돈 써 없애는 일에 그야말로 목줄이 타게 매달려 있었다…… 정치를 잘 한다는 것이 나라 돈을 어떻게 갈팡질팡 써 없애서 국민의 신망을 얻고,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느냐에 달린 것으로 고도의 배짱과 멋과 철면피 같은 얼굴 표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쯤 소개하면 이 소설의 우화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돈이 너무 풍족해져서 쓸 데가 없는데 그게 자꾸 쌓여 가기에 강제로 돈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면서기는 하루 20만 원, 면장은 하루 백만 원, 군수는 천만 원, 도지사는 8천만 원, 차관, 은행장, 장성, 국회의원, 신문사 사장, 대학 총장 등이 3천만 원에서 9천만 원 사이이고, 장관이면 아무튼 하루 1억 원이라는 돈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는 이 희한한 나라는 돈 때문에 사회 문제가 야기된다. 사회적 혼란이 극치에 이른 이 나라에서 주인공 안치몽(安治夢, 평안하게 꿈을 다스린다는 다분히 상징적인 이름이다.)은 ‘정부의 입장을 매끈하게 변명하는’ 변백부(辯白部)장관이 된다. 이런 나라인지라 언어의 개념도 달라져서 ‘부과한다는 말은 정부에서 무작정 돈을 국민에게 배당하여 떠넘긴다는 뜻’으로 해석될 정도로 돈의 소비는 미덕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미덕은 잘 행해지지 않는 법인데 이 나라의 돈 소비만 해도 매끄러운 해결책이 없어 신문 사설들은 ‘백성인들 다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냐. 툭 하면 하나 앞에 1천만 원이라는 보너스 공세만을 생각해 내지 말고 정부에서 강한 심장을 길러서 좀 더 대담하고 무식한, 좀 더 기상천외의 불법 정책을 써서 돈을 황급히 덜어 내 없애야 할 것 아니냐.’고 질타할 정도다.

 

모든 게 거꾸로 된 가치관인 이 나라에서는 물건을 사는 데도 돈을 받으며 돈을 써서 없애는 것이 애국이 되는 질서가 통용된다. ‘송충이보다 더 징그러운 돈’ 때문에 부통령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가중되면서 도둑들은 밤중에 남의 집에다 돈을 갖다 쓸어 넣고 도망치곤 하는 꿈같은 세상이지만 인생살이는 여전히 고달프기만 하고 결국 돈이 온 천지를 휘덮는 위기에서 소설은 끝난다.

 

이 우화가 발표된 것은 1969년으로 정치적으로는 독재, 경제적으로는 독점이 부정부패와 야합하여 민심이 소란스러울 때였다. 당대의 지배세력이 지닌 탐욕에 대한 통렬한 풍자성을 띰과 동시에 이 소설은 반유토피아적 관점을 도입한다. 물질적 풍요를 국가 건설의 최고 가치요 목표로 설정했던, 5․16 군사 독재에 대한 싸늘한 비웃음을 담아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어떤 경제적 풍요도 도덕적 정신적 기초가 없이는 불행뿐이라는 소박한 교훈성도 암시한다.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임과 동시에 이상향에서의 주인은 노동자나 농민일 밖에 없다는 미래를 향한 전망성도 제시한다.

 

염재만의 상당수 작품이 지닌 <떡>과 같은 우화성 혹은 풍자성은 <독배(毒杯)>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잔인 무쌍한 독종’으로 별명이 전갈인 홍창도는 건축업자가 쓰던 현장 감독용 숙직실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식당 주방장 경호삼, 포크레인 중장비 기사 오승백,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진우길, 야간 업소 뜨내기 악사 곽배호 넷을 틀어쥐고 착취해서 자신은 에어로빅댄스 교사 민미라와 놀아나기 바쁘다. 전갈의 시국관 내지는 사회관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놈은 서부 병원 일대를 위시한 광활한 서울 땅을 가기키면서 저기가 바로 전쟁터라고 정의하였다.

“돈, 여자, 자가용, 그리고 대학교가 뭐겠어? 그 따무니가 뭐야? 알면 말해 봐!”

그랬으나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고 빵간엘 드나들게 만들었고 죽을 때엔 혀를 깨물게 만든 대적! 철천지원수가 그 네 가지야. 똑똑히들 명심해서 복수하고 죽으란 말야!”

놈은 똑 북향집인 갱생 본부를 남향집이라고 우겼다.

“이 집은 남향집야. 그러니까 여기서는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는 거야. 알았지 너그덜?”

(<독배>)

 

전갈의 독재 방법은 위협, 폭력,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는 자살 협박 등 여러 가지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었는데 시달리다 못한 민미라가 자살한 뒤 그는 건물의 양성화와 시유지 불하 교섭비조로 또 엄청난 돈을 요구한다. 탄압이 극도에 이르자 네 사람은 저절로 “전갈놈을 죽여야 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어떻게 죽여?”라는 대목에서 주춤대던 이들은 전갈이 독약을 마시겠다고 위협하면 “마셔 봐 전갈!”이라고 소리치기로 하며 예상대로 전갈은 그런 말을 했고, 넷은 이를 만류하지 않은 채 죽도록 버려둔다. 전갈이 독배를 들이키고 쓰러지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1979년에 발표되었는데 서슴없이 10․26을 연상하게 된다.

 

긴급 조치 치하에서의 혹독했던 시절을 상기할 수밖에 없는 전갈의 독종 행위는 결국 자멸로 막을 내리는데 이것은 작가의 인생관의 일면이기도 하다. 즉 작가는 모든 악은 스스로 응징하게 마련이라는 입장을 취하며 이런 생각은 그의 또 다른 작품 <만고명당(萬古明堂)>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8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를 시점으로 삼은 이 소설은 불암산 중턱의 한 명당자리로 찾아 온 세 사람의 형색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부산, 부여, 목포에서 온 세 사람으로 저마다 그 명당자리에 묻혀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려 다투는데 끝내는 명당자리가 폭파해 버려 셋 다 헛물을 켜는 것으로 마감된다.

 

<만고명당>이나 <독배>는 정치적 우의 소설로 그 멸망을 민중 혁명에 의한 것으로가 아닌 스스로의 자멸로 귀착짓는데 이것은 작가의 소박한 현실 인식과 인도주의적 자세 및 토착적인 인과응보의 가치관에서 연유하는 결과인 것 같다.

 

염재만의 소설은 이처럼 풍자성과 우화적 요소가 가미된 현실 비판이 그 주내용이며 비판의 대상은 사회 체제와 지배 계층으로 삼는다. 다만 보다 치밀한 사회과학적 비판의 분석도를 통한 우의적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